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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年,日艦雲揚號砲轟江華島,並在翌年逼迫李氏朝鮮與日本簽定〈丙子修好條約〉(或稱〈江華條約〉,自始到日本戰敗,日本影響了朝鮮民族70年,並殖民統治了36年。由於戰後隨即分裂成兩個韓國,韓國與日本關於戰爭賠償的問題一直懸而未決。

1963年12月朴正熙以十五萬票的差距在大統領選舉中勝出後,新憲法生效並開啟了第三共和。其間開始與日本磋商戰爭賠償問題,然而磋商過程以及戰爭賠償的問題似乎無法獲得民眾普遍的支持。因此在1964年3月間,漢城主要大學開始發起反對「對日本的屈辱外交」示威活動,學潮並擴大到全國。

1965年4月,反日韓簽署建交協定的示威在漢城舉行,幾乎形成了政治風暴,但南韓政府還是在兩個月後與日本簽署的協定,並在該年12月與日本正式建交。當時所簽署的解決戰爭賠償問題的協定,當中,記載著當時日本政府曾提議對日本殖民統治韓國時期的受害者進行個別賠償,但被當時的韓國政府拒絕。而「日韓協定」之中,戰爭賠償最後是日本向韓國政府提供8億美元的「經濟合作資金」做結。這些錢,最後大部分都韓國政府用於經濟建設和開發,只有很少部分發放到韓國受害者手中。

就像是慰安婦議題的不斷擴大,新政府上任後,在2004年的2月間,有99名日本殖民統治受害者向漢城行政法院提出訴訟,要求公開與韓日協定相關的57份文件。漢城行政法院判定原告勝訴,要求韓國政府公開其中的5份文件。而韓國政府對判決不服,並向漢城高等法院提出上訴。不過,近來韓國民眾對於日本殖民歷史問題不斷質疑之下,南韓政府決定公開《韓日協定》的內容。這個「由下發起,由上回應」的「向歷史要真相,向過去討公道」的事件,其後續發展值得我們進一步的觀察。


【東亞日報】[社論]公開韓日協定,重要的是後續措施

DECEMBER 28, 2004 22:53

隨著政府決定公開1965年簽定的《韓日協定》,曾被蒙在面紗後的現代史疑問將揭曉。因爲國民對《韓日協定》的簽署過程提出過很多疑問,政府總有一天還是要公開相關資料。雖然在市民團體提出行政訴訟的情況之下,政府不得以才決定公開相關資料,但重要的是公開後的後續措施。
通過公開資料應該明確的核心問題是韓日會談的性質以及韓日兩國政府對日本帝國主義強壓統治歷史的處理方式。政府被迫參加會談,以及爲了獲取賠償金進行“乞討性外交”的事實真相也應公佈於衆。政府雖決定公開回憶錄等1200多篇資料,但我們認爲,爲了查明真相,如有必要就應公開全部相關資料。

受到日本帝國主義迫害的人們很久以前就表示,是政府阻止了日本政府對受害者給予個別賠償的作法。還有人指出,政府雖然從日本方面得到了無償支援3億美元和有償支援2億美元以及商業貸款3億美元等共8億美元的資金,但政府只對受害者給予了形式上的補償。受害者的主張和政府所謂的“我們已經盡了全力”的解釋相差甚遠,所以應通過此次公開資料,分清是非曲直。

雖說是40多年以前的陳年舊事,但作爲不能忽視外交問題的政府一定會感到左右爲難。但《韓日協定》是兩國政府在不顧國民強烈的反對的前提下簽定的協定,所以,雖然爲時嫌晚,也應揭曉事實真相。如果曾經犯下錯誤,就應及時改正,並出臺相關的對策。

當政府於昨日決定公開《韓日協定》相關資料後,日本媒體便報道稱,日本帝國主義侵略時期被日本人強制徵用到日本後在工廠死去的7名韓國人的遺屬要求日本政府給予撫恤金並提起了訴訟,但最終敗訴。只有政府敢於面對過去,日本政府才能負起道德責任和人道主義責任。


[사설] 한일협정 공개, 후속조치 중요하다  20041228185112

DECEMBER 28, 2004 22:53

정부가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기로 함에 따라 베일에 싸였던 현대사의 의문들이 풀리게 됐다.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혹을 제기해 왔기 때문에 관련 문서 공개를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다. 시민단체의 행정소송에 따라 정부가 할 수 없이 공개하는 방식이 됐지만 중요한 것은 공개 이후의 후속 조치다.

문서 공개를 통해 규명되어야 할 핵심 의혹은 한일회담의 성격과 일제의 강압통치에 대한 한일 양국의 처리 방식이다. 정부가 굴욕적으로 회담에 임하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 구걸 외교를 했다는 의혹의 진위가 규명되기 바란다. 정부는 회의록 등 1200여 쪽의 문서를 공개하기로 했으나 의혹 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머지 문서 공개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일제 강점 피해자들은 오래전부터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 대한 개별 배상을 막았다고 주장해 왔다. 또 정부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8억 달러의 돈을 일본으로부터 받았지만 소수의 피해자에게 형식적인 보상만 했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자들의 주장과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정부의 해명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는 만큼 이번 문서 공개를 통해 잘잘못이 가려져야 한다.

40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외교 행위를 무시할 수 없는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협정이 국민의 격렬한 반대 속에 체결됐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는 이제라도 실상을 밝혀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상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문서를 공개하기로 한 어제 일본 신문은 일제 때 끌려가 공장에서 숨진 한국인 7명의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부가 과거에 대해 떳떳해야 일본에도 도의적 인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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